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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나 조회 61회 작성일 2021-12-27 23:42:4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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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스페셜 – 구운몽, 김만중의 사모곡

17세기 조선사회에서 소설은 언문, 패관문학이라고 폄하되었다.
지배층에 대한 도전이나 풍습을 해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대제학’이란 벼슬에 올랐던 김만중,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구운몽’을 집필한다.
김만중은 문학의 장르가 아닌 그 속에 무엇을 담느냐를 문제로 삼았다. 그래서 소설이란 장르에 부처님의 진리와 공자의 사상, 성리학을 담은 ‘구운몽’을 써냈다.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은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성(城)을 지키다 분신 자결했다. 선조의 딸, 정혜옹주의 외손녀였던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 부인은 몸소 베를 짜고 수를 놓아 생계를 꾸리면서도 유복자였던 김만중에게 엄격하고 철저한 교육을 시켰다.
‘왼손엔 미음 그릇, 오른손의 회초리’로 표현되는 그녀의 교육철학은 김만중의 문학 세계와 사상적 토대를 다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구운몽’은 일반 서민부터 양반관료, 심지어 왕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의 사람들이 향유한 작품이었다.
오늘날 도서대여라 할 수 있는 세책, ‘구운몽’은 특히 부녀자들이 앞다퉈 찾아 읽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영조와 정조 역시 ‘구운몽’을 읽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전 계층의 사랑을 두루 받던 ‘구운몽’은 독자층을 세계로 넓힌다.

서인과 남인의 치열한 당파싸움 속에서 김만중은 3번이나 유배 길에 올라야 했다. 배웅을 나왔던 어머니는 “차마 아들이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며 먼저 가마에 올랐다. 김만중은 유배지에 와서도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속에 지냈다. 유배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어야 했던 김만중, 그 또한 3년 후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가 유배지에서 썼던 ‘구운몽’은 어머니를 위한 사모곡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자간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빛을 본 ‘구운몽’은 17세기 고전으로만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신역사스페셜 124회 – 구운몽, 김만중의 사모곡 (2012.11.29.방송)
http://history.kbs.co.kr/
남자샴푸 :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슬펐을까
ᄂᄂᄃᄌ : 일병 시절에 읽었는데.. 하루는 더럽게 길고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과로 답답하던 때에 야간연등 도서관에서 옆자리에 있길래 우연히 집어든 책이 구운몽. 고전소설이라면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지루하고 뻔한 소설인데 구운몽이 그 편견을 완전히 박살냈다. 짜임새와 완성도, 재미가 지금 소설들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대단한 작품이었음. 얼마나 재밌는지 책도 잘 안 읽던 내가 연등시간을 2시간 초과해서 당직간부가 순찰돌다 알아차릴 때까지 시간도 잊어버리고 밤새워 읽던 소설. 옛 동양의 정취와 옛사람들의 사고방식, 가치관, 세계관을 깊숙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책.. 여름밤에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다시 만날지 모르겠다. 김만중 선생 좋은책 고맙습니다.
맹옥희 : 우리의 역사는 참~지혜롭고 해박하고 무어라 표현 못할 삶의지혜 어머니의 지혜 ~세종 대왕님 존경 합니다~한글로 역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 한국인 이라서 자랑 스럽습니다
푸링글스 : 역사저널 자주 좀 올려주세요 현기증나게 하지말고~~!^^
'구운몽'이 국가별로 번역되서 세계적으로 관심받고 읽혀지고 있는게 괜히 뿌듯한데? 이런 국뽕좋지
ssidgythi : 태어난 상황이 드라마네
김만중의 아버지 조모 대단하신 분이구나

KBS 역사스페셜 – 임금도 막을 수 없다. 조선의 묘지소송

- 조선을 뒤흔든 묘지 소송, 산송(山訟)은 무엇인가?
산송은 조상의 묘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송을 말한다.
조선 시대 관아에 내던 청원서 중 70%가 묘지에 관련된 것이었다.
선산(先山) 영역을 지키려는 사대부 가문의 싸움이 주를 이뤘다.
산송을 겪지 않은 집안이 없을 정도였다.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조상의 묘지 문제는 가문과 가문의 대립이었고 이는 곧 패싸움으로 번져 사망자가 속출하는 지경에 이른다.

- 열일곱 처녀 박효랑이 왕의 어가행렬을 가로막은 까닭은?
18세기 장안의 화제가 된 대표적인 산송 사건이 있다.
숙종38년(1712년), 앳된 얼굴의 선비가 돌연 왕의 행차를 가로막고 아버지의 원수를 처벌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사연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열일곱 어린 처녀 박효랑이었다. 그녀가 남장을 감행하고 왕 앞에 나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박효랑의 아버지는 묘지 소송에 휘말려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집안 대대로 모시던 조상의 묘지마저 빼앗긴다. 박효랑의 언니 또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다 석연찮은 죽음을 맞는다.
산송으로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언니를 잃은 박효랑의 한 맺힌 사연은 전국 유림의 여론을 들끓게 했고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세자 영조는 임금 즉위 후 사건의 재조사를 지시한다. 과연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역사스페셜에서는 사건의 전후과정이 담긴 [박효랑실기]를 토대로 박효랑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본다.

- 임금도 막지 못한 ‘묘지 분쟁’
결국 산송은 조선 후기 최대의 사회문제가 된다. 사대부가의 양반들은 남의 선산에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투장(偸葬)’도 서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영조가 직접 나서서 중재를 한 사례도 있다.
청송 심씨와 파평 윤씨 두 집안 간의 산송 싸움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임금도 막지 못해 결국 대를 이어 계속됐고 지난 2008년 비로소 극적으로 해결됐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격화됐던 산송!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 지나친 산송 격화, 조선 후기 사회를 망치다
산송은 노비 소송, 전답 소송과 더불어 조선 사회 3대 민사소송으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두 소송에 비해 다루기 까다로웠다.
모호한 법 규정 탓이었다. 판결이 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고 이미 판결이 난 사건이 여러 차례 재소되기도 했다. 산송으로 인한 민원성 소송제기로 관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정약용은 당시 산송 문제를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묘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송이 이제 폐속의 경지에 이르렀다
싸우고 구타하여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절반이 이에서 비롯된다 - 목민심서

신역사스페셜 116회 – 임금도 막을 수 없다. 조선의 묘지소송 (2012.10.4 방송)
http://history.kbs.co.kr/
노올자 : 조선시대 묘지 소송이야기지만, 그 당시 사회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네.
고려, 조선, 요즘 장례 문화를 통해 사후세계에 관한 종교가 그 시대 정치와 사상을 지배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까지 여기서 수많은 역사 다큐를 봤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다큐였다.
예능 역사 다큐보다 차분하고 깊이가 있는 예전 역사 다큐가 난 더 좋아.
이강석 :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도 자신의 조상 묘 위에 다른 사람 묘가 있으면 자손이 망한다는 속설이 있어서 결사적인 묘 다툼이 벌어진 것입니다. 묘자리 하나 쓰자고 하면 누가 임야를 주나요 할수 없이 필요도 없는 몇만평 산을 사야했어요. 저의 집도 1967년도에 당시 돈 150만원을 지불하고 악산이지만 지관이 명당이라고 하여 1만5천명 악산을 구입했고 돌아가신 어른들을 모셨습니다. 당시 서울에 집값이 50만원이었어요 집 세채값을 주고 오로지 묘자리 하나 보고 거금주고 아무 쓸모 없는 악산을 샀습니다. 당시 묘자리 때문에 산 값이 금값이었어요. 그토록 공들여 산 명당 산인데 멧돼지들이 묘를 가만히 나두질 않았어요 봉분을 아예 날려 버리는 것입니다. 복구 시켜 놓으면 또 다시 날려버리고 그런 숨바꼭질을 숫하게 하다가 견디다 못한 어른들이 화장을 선택하고 납골당에 모셨어요 지관도 멧돼지 횡포는 생각 못한것 같아요 서울집 세채값을 지불하고 산 거액의 산은 지금 텅 비어 있습니다.
워렌버핏 : 소송 400년 소오름... 기네스감 아닌가?ㅎㄷㄷ
Sohn Son : 조상의 업적정신을 이어받아 성을 쌓아버렸네 ㅋㅋㅋㅋㅋ
I J : 우리 집도 어느 해 선산 가보니까 누가 몰래 우리 선산에 묏자리 써서 황당했었는데.. 자주 가는데도 그렇게 해놨다는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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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https://mbn.co.kr/news/world/4661311]
[참고기사:
https://www.korea.kr/news/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81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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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송숙경 : 몽골의 국민성이 어떤지,정치인들의 성향이 어떤지 일본과의 관계가 어떤지,모든 여건을 고려해서 대응을 해얄것같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Kyungan Kim : 폭력에 가담한 4명의 학생들은 엄벌에 처해야 외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깨달아 이후에는 차별 행위가 현격히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것이다. 영악스런 아이들이 촉법 나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은만큼 촉법소년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엄벌을 면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나브로 : 우리나라 법을 바꿔야 된다.
저런 일이 외국인에게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촉탁소년법은 이제 없어져야 될 악법이다.
죄를 지으면 무조건 처벌을 받게된다는 것을 교육시켜야 된다.
황박연 : 저같은 일은 단순히 어느 한사람의 일탈 행위가 아닙니다 몽골인들 마음속에 분노가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여고생 폭행사건 때문 이라고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몽골은 역사에서도 알수 있지만 약탈을 일삼는 민족 이라는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호호혜로 협력은 좋은 일이지만 개발도상국들의 문화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도 중히 살펴야 할것입니다
beemmer : 동남아건 몽골이건 심지어 미국이라도 국제사회에서 믿을건 항상 자기자신뿐이라는거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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